
아마 아티스트는 기자나 평론가의 요약을 환영하지 않을 것이다. 글로벌 슈퍼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들 각자 약 1년6개월의 군복무 동안 해온 수많은 고민을 어떻게 압축할 것인가.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방탄소년단 멤버 제이홉(정호석)이 팀 데뷔 12주년을 맞은 13일 오후 경기 고양 고양종합운동장에서 펼친 월드투어 앙코르 콘서트 '제이홉 투어 '호프 온 더 스테이지' 파이널(j-hope Tour 'HOPE ON THE STAGE' FINAL)'에선 멤버들이 스스로 지난 시간을 요약했다.
제이홉은 지난 2월 서울 송파구 케이스포돔에서 출발한 자신의 첫 솔로 투어의 약 3개월을 이날 펼쳐냈다.
자신의 활동명을 짓게 된 배경인 그리스 로마 신화 '판도라의 상자'에서 모티브를 따온 이번 공연 구성에서 브리지 영상 등을 통해 판도라 상자 밖 자신, 판도라 상자 속 자신을 병치하며 이야기꾼으로서 재능을 증명했다.
또한 이 판도라의 상자는 무대 위에서 물리적으로도 구현된다. 제이홉이 판도라의 상자에 갇혀 있거나 튀어 나오는 구성 등으로 인해 서사를 실제 오프라인으로 확장한 것이다.
무엇보다 콘서트는 한 아티스트가 개성의 영역을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끝까지 밀어붙이는 행위 중 하나다. 계속 더 나은 인간이 되려는 노력을 하며 자신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나 스스로 그리고 팬들도 놀라게 된다.
투어를 도는 내내 신곡을 발표하고 새로운 곳에서 공연하며 그것으로부터 배운 것을 콘서트에 바로 반영하는 제이홉의 지행합일은 그래서 특기할 만하다.
같은 날 발표한 신곡 '킬린 잇 걸(feat.GloRilla)'를 비롯해 '모니리자' '스위트 드림스' 등 올해 발표한 싱글 3부작을 공연하는 대목에선 스트리트 댄서로 출발한 제이홉의 다양한 춤 선과 해석을 만날 수 있었다.
아울러 이날은 방탄소년단이 순차적인 군복무로 인한 챕터 2를 경험한 방탄소년단이 아미 앞에서 챕터3을 약속한 자리이기도 했다.
"추운 겨울 끝을 지나 / 다시 봄날이 올 때까지 / 꽃 피울 때까지 / 그곳에 좀 더 머물러줘 / 머물러줘"라고 제이홉과 진이 듀엣한 앙코르 첫 곡 '봄날'처럼. 제이홉은 노래 도중 하이브 사옥에 새겨진 문구이기도 한 "위 아 백"을 외쳤다.
회복의 노래를 방탄소년단보다 더 잘 그려내는 팀이 있는가 누군가 묻는다면, 말문이 턱 막힌다. 상처를 희망으로 치환하는 데 이 팀은 놀랍도록 경이롭다.
비교문학이 전공인 문학평론가인 신형철 서울대 영문과 교수는 지난 2019년 열린 국제 포럼 '비욘드 앤 비하인드 BTS'에서 방탄소년단을 미국 힙합스타 에미넘과 비교하며 이렇게 분석한 적이 있다.
에미넘의 대표곡 '루즈 유어셀프(Lose Yourself)'가 비관적인 상황을 이겨내는 노랫말로 인기를 끌었다면 방탄소년단은 '스스로를 사랑하라(Love Yourself)'는 가사로 대중을 위로한다며 무엇보다 방탄소년단은 '이겨라'고 부추기지 않고 '져도 된다'고 노래하며 팬들을 위로한다고 짚었다.
방탄소년단은 슈퍼스타가 된 지금까지도 승리 서사보다는 패배서사에 더 애정을 갖고 자신의 상처와 맞서고, 아미의 손을 잡고 세계의 편견과 맞선다. 오히려 삶에서 실패한 쪽이 더 사랑했다는 느낌을 주는 방탄소년단의 미덕은 과정을 중시하는 미학이다.
정국이 전역 이틀 만에 무대에 올라 제이홉을 지원사격하고, 진이 방탄소년단 데뷔 기념일에 아미를 직접 만나고 싶어 제이홉에게 무대 위에 서게 해달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고 하는 대목은 객석에서 열렬히 이들을 응원한 RM·뷔·지민·슈가까지 일곱 명이 어떻게든 아미와 함께 있겠다는 의지의 경로다. 그건 RM이 이날 신형철 교수의 영화 평론집 '정확한 사랑의 실험'의 글을 빌려 표현한, 아미를 어떻게든 정확하게 사랑하고 싶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다시 사랑할 결심' 말이다.
제이홉은 "이제 멤버들이 다 군 복무를 끝내고 돌아오는 시점이 됐어요. 그렇죠 여러분들께 보여드릴 게 정말 많겠죠. 더 열심히 열심히 잘 준비해서 꼭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했다. 또 "멤버들은 저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고 그들이 없었다면 제가 없었고 그리고 또 여러분들이 없었다면 우리 팀도 없었을 거예요. 이런 의미로 여러분들과 저는 이렇게 연결돼 있는 부분이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제이홉 이번 콘서트는 단숨에 매진돼 이날 2만7000명이 운집했다. 14일 같은 장소에서 한 차레 더 열려 양일간 5만4000명의 아미가 찾게 된다. 같은 날 고양종합운동장 인근인 킨텍스에서 펼쳐진 방탄소년단 데뷔 12주년 기념 '2025 BTS 페스타'엔 예상보다 훨씬 많은 10만 이상의 인파가 몰렸다. 킨텍스 2전시장 바로 앞에서 GTX 킨텍스역에서 내려 이곳으로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횡단보도 바로 앞까지 구불구불 줄이 이어졌다. 14일까지 열리는 이 페스타엔 추정보다 훨씬 더 많은 인원이 다녀갈 것으로 예상된다. 방탄소년단 완전체에 대한 그리움이 그 만큼 컸다는 방증이다.
제이홉의 공연이 끝난 뒤에도 경기장 주변엔 방탄소년단이 탄 차량을 환송하기 위한 인파가 대거 몰렸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전역에 대한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대해 미국 로큰롤 스타 엘비스 프레슬리가 1960년 독일에서 18개월 간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할 때 빚어진 현상과 비교했다.